타이거 우즈 Tiger Woods, Eldrick Tont Woods
출생 : 1975. 12. 30. 미국, 염소자리, 토끼띠
나이 : 47세
소속사 : 엑셀스포츠매니지먼트
신체 : 185.4cm, 83.9kg
가족 : 아버지 얼 우즈
데뷔 : 1996년 PGA 입회
당시 중계권을 갖고 있던 케이블방송의 시청률은 물론, 관람을 위해 경기장에 들어가고자 했던 엄청난 갤러리들의 숫자로 인해 티켓은 장당 7,000달러까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약속된 단체 티켓을 못 구해 권총 자살하는 사람까지 등장했을 정도였다. 1997년 봄의 오거스타 내셔널은 정말 뜨거웠는데 이때 세워진 14.1% 이르는 시청률과 단일대회 4,400만 시청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매일 18홀 1라운드씩 4일간 4라운드로 펼쳐진 이 경기에서 타이거는 첫 날은 부진했지만 대회 이틀째 되는 날부터 타이거는 오거스타(골프장)를 말 그대로 초토화시켜버린다.
파 5를 파 4홀처럼, 파 4홀을 파 3홀처럼 플레이하던 타이거 우즈는 대회에 참여한 투어 프로들과 갤러리들 그리고 대회 관계자들을 경악시키며 합계 18언더, 2위와는 무려 12타차로 우승컵을 거머쥔 것이다.
비교 불가능한 비거리, 정확한 퍼팅, 압도적인 경기운영.. 이제 막 아마추어 딱지를 떼고 프로골퍼로서 치르는 첫 번째 메이저대회가 과연 맞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출중한 기량을 선보이면서 세계 골프계는 놀라움을 넘어 전율과 함께 쇼크 상태에 빠졌다.
마스터스를 분기점으로 삼아 PGA와 다른 메이저 대회 사냥(?)에 본격적으로 나선 타이거 우즈는 마치 전성기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처럼 천하무적 그 자체였고 폭주하는 기관차였다.
메이저 대회 18승을 기록하며 전설로 남아있던 잭 니클라우스 조차 나를 넘어설 골퍼라고 인정할 정도로 군계일학의 활약과 함께 무려 683주간 세계 골퍼 랭킹 1위를 고수한다. (2위는 331주간 1위 타이틀을 갖고 있던 그렉 노먼)
97년도에 2백만 달러로 상금랭크 1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15년 동안 총 10번의 상금 왕을 차지했으며 연간상금 천만 달러를 돌파한 최초의 골퍼가 된다. 타이거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무려 7년간 142개 투어에 출전하는데,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컷 통과 후 본선에 오른 기록을 갖고 있다.
골프는 투어에 출전한 프로골퍼들 중에 컷 오프를 통과한 뒤 본선에 오르면 대회가 마련한 상금을 우승자부터 시작해 차례대로 배분받는 방식이다.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은 골프를 하면서 이 오랜 기간 동안 타이거는 금액을 떠나 자신이 뛴 모든 투어에서 상금을 챙겼다는 얘기다.
4대 메이저대회 15승, PGA 투어 82승을 올린 그는 90%가 넘는 컷 통과율과 22%가 넘는 승률, TOP 10 확률은 참가횟수의 절반을 넘기는 55%로 골프에 관한한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타이거 우즈의 등장이후 골프는 장비와 규칙, 우승 상금을 포함한 총상금 그리고 골프코스에 변경까지 모든 것에 변화를 가져온다.
단적인 예로 1990년도에 시즌상금 100만 달러를 돌파한 골퍼는 단 2명에 불과했으나, 정확히 20년 뒤인 2010년도에는 무려 107명의 프로골퍼가 시즌상금으로 1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인다. 시대를 타고난 황제 타이거 우즈 덕분에 그와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수많은 PGA 투어프로들이 그와 함께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데뷔 초기 투어골퍼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던 타이거 우즈는 자신의 능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또 다른 의미의 황제였다. 운동선수로서는 치명적인 다리를 잃을뻔한 사고를 겪은 그를 애타게 기다리는 건 골프팬들만이 아니라 PGA와 투어프로골퍼들 또한 마찬가지다.
시대적 배경과 환경이 다르긴 했지만 아놀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 같은 전설들조차도 이런 엄청난 저변확대와 전 지구적 흥행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타이거 슬램
프로골퍼로서 등장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던 타이거는 월등한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극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승부가 정말 많았던 골퍼였다. 골프에서 4대 메이저 대회를 제패하면 그랜드슬래머로 인정을 받는데, 타이거 우즈는 그 어렵다는 4대 메이저 대회를 2년에 걸쳐 연속으로 우승해버린 대기록을 갖고 있다.
2000년과 2001년 시즌에 이룩한 것으로 이름 하여 ‘타이거 슬램’이라 부른다. U.S 오픈을 시작으로 영국의 디 오픈, PGA 챔피언십, 마스터스 토너먼트까지 대회가 개최되는 순서대로 제패하는 기적을 선보였다.
시작점이었던 U.S 오픈의 경우 2위와의 격차가 무려 15타차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을 거두었고, 두 번째 메이저 스케줄인 디 오픈을 우승하면서 PGA 챔피언십과 마스터스를 이미 우승해 본 타이거는 이 때 이미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상태였다. 그러고도 연이은 스케줄에 따라 참가한 PGA 챔피언십과 마스터스에서 끝내 우승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이다.
괴물 같은 타이거 우즈의 등장 이후 마스터스 토너먼트를 개최하는 오거스타 내셔널은 개장 68년 만인 2002년에 전장을 315m로 늘였고, 다시 2011년 증축에 착수해 총 코스길이가 6,716m가 되었다.
골프장의 길이를 늘려도 타이거 우즈와 그의 플레이에 영향을 받은 많은 프로들의 전체적인 실력향상과, 평균적으로 길어진 골퍼들의 비거리 때문에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미국골프협회는 골프공의 반발력을 제어하는 것을 논의한다.
타이거의 수많은 우승 중에서도, 그 많은 극적인 우승 중에서도 자신의 스폰서였던 나이키를 마치 홍보라도 하듯 승리한 대회로 2005년의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꼽힌다. 대회 마지막 최종 라운드에서 크리스 디마르코와 맞붙었는데, 1타차로 앞서고 있던 타이거 우즈가 16번 홀에서 보여준 칩샷은 골프사에 두고두고 남을 명장면으로 남았다.
클로즈업으로 중계화면에 잡힌 이 장면으로 나이키가 누린 광고효과는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가 등장한 뒤 세계 골프계는 타이거로 해가 뜨고 타이거로 해가 졌다고 할 정도로 우승을 못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는데,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한국의 양용은에게 일격을 당한 일이 세계 스포츠뉴스 이변 TOP 10에 꼽힐 정도였다.
천재골퍼로 이름을 날리던 타이거 우즈는 약관 20대에 어느덧 골프황제가 되어있었다.
20대에 마스터스를 정복하다.
20세기 골프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며 전설의 반열에 오른 아놀드 파머와 잭 니클라우스는 모두 20대에 마스터스를 제패한 공통점이 있다. 타이거 우즈 역시 마찬가지다.
아놀드가 29세, 잭이 23세, 타이거는 21세에 각각 우승에 성공했는데 다만 타이거가 1996년 여름에 프로에 데뷔했으니, 그는 본격적인 첫 시즌의 시작점(마스터스는 매년 4월에 개최된다)에 최고 권위의 투어대회부터 석권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은 셈이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감히 넘볼 수 없는 기록과 성적을 지금까지 남겨왔고 천문학적으로 벌어들인 돈과 누구나 알아보는 스타성 등을 타이거 우즈는 두루 갖추게 된다. 그는 골프선수로서 20대에 이룰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이뤘다.
샘 스니드가 보유하고 있던 PGA 최다승(82승) 기록과 잭 니클라우스가 갖고 있던 4대 메이저대회 우승횟수(18승) 돌파는 당시 그가 가진 능력으로 볼 때 시간이 좀 더 필요했을 뿐이었다.
프로무대 데뷔 후 신화를 써내려가던 타이거는 디 오픈 투어대회 중에 자신이 사랑하는 배필을 만나 3년의 연예 끝에 결혼식을 올리며 가정도 꾸렸다. 마치 영화의 제목처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정도로 완벽한 성취와 환희의 시간이 30대 초반까지 10년 넘게 지속됐는데, 세상사 절대 쉽게 가는 법이 없듯이 이 영웅에게도 시련이 하나 둘씩 닥치기 시작한다.
거듭되는 부상과 재활
투어골퍼로서 엄청난 비거리와 몸통 회전을 선보이던 그는 2008년 무릎부상으로 첫 번째 수술을 받게 된다. 평소 파워 넘치던 타이거의 스윙 폼은 왼쪽 무릎에 엄청난 압박을 가했고 결국 이것이 원인이 되어 부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수많은 팬들의 걱정과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짧은 재활기간을 거쳐 필드에 다시 복귀한 타이거 우즈는 U.S 오픈에 참가해 성치 않은 몸으로 고통을 참아가면서 자신의 14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하는데 일단은 성공한다. 결과론이기는 하지만 30대 초반에 아직도 이른 나이였던 그는 충분히 시간을 갖고 좀 더 쉬었어야 했다.
이 대회에서 무릎통증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강한 승부욕과 집념을 보여주며 마지막라운드에 연장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보여줬지만, 부상을 안고서 경기에 임한 대가는 그 해 남은 투어경기를 모두 포기해야 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세기의 스캔들
8개월의 재활 끝에 이듬해인 2009년 또 다른 메이저 대회였던 PGA챔피언십 우승에 도전하지만 이번엔 한국의 양용은에게 일격을 당하며 준우승에 그치는데 그 해 연말 세기의 스캔들이 터지고 만다.
웬만한 재벌총수에 버금가는 재력에 유년 시절부터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 자가용 제트기로 세계 곳곳을 다닐 수밖에 없는 투어골프선수의 스케줄.. 상대적으로 욕망과 호기심 넘치는 여성들을 유혹할 만한 모든 조건을 넘치게 갖추고 있던 그는 수많은 여인들과 육체적 관계를 맺어갔고 시간문제였을 뿐 결국엔 문제가 크게 불거지고 만 것이다.
오랜 기간 독보적으로 최고의 정점에 있었던 만큼 그를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선과 쏟아지는 언론들의 보도양은 실로 엄청났고 대가도 혹독했다. 안 그래도 종목을 넘어서는 초대형 스포츠스타로서 평소에도 집중조명을 받던 터에 섹스스캔들이라는 인류 공통의 화제 거리 앞에서 타이거는 엄청난 압박감과 부담감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스캔들에 이은 이혼과 부상후유증으로 고생하던 타이거는 안타깝게도 골프선수로서 황금 같은 30대의 상당시기를 재활과 자숙의 시간으로 보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지구적 아이콘으로서 그가 이룩해온 역사와 이력이 너무나 엄청났었고 청소년기를 막 지난 이른 시기부터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온 그였기에 전설들이 쌓아놓은 기록을 넘어설 시간적 여유는 충분히 있어 보였다.
돌아온 골프 황제
2019년 마스터스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2019년 마스터스에서 다시 한 번 우승컵을 들어 올린 타이거는 마침내 PGA 최다승 타이(82승)를 이뤄냈고, 메이저 대회 15승을 거두며 기대감을 한껏 고조 시켰다.
스케줄을 조절해가며 잭 니클라우스를 넘어설 준비에 여념이 없던 이 골프 황제에게 또 한 번의 불운이 닥치는데 이번에는 선수생명이 끝장날 수준에 차량전복사고를 겪게 된 것이다.
타이거 우즈의 교통사고 뉴스보도
이 청천병력 같은 상황에서 목숨은 건졌지만 최악의 경우 다리절단까지 염두 할 정도로 후유증이 큰 사고였기에 타이거 우즈가 골퍼로서 필드에 서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매스컴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오거스타를 시작으로 투어대회가 열리는 골프장들의 전장을 늘리고 전 세계 PGA 투어대회 상금의 대폭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키며 경쟁관계의 동료골퍼들 조차 존중과 경외심을 갖고 바라보던 타이거였다.
프로무대 등장이후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구촌 골프 저변을 큰 폭으로 확장시키고 글로벌 골프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이끌었던 그였기에 전 세계 골프산업계가 받은 충격과 안타까움은 특히 더했다.
엄청난 사고 뒤 수술과 치료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다행히 다리절단도 면했지만 산산 조각난 뼈를 이어붙이기 위해 타이거의 다리뼈에는 거대한 막대와 철심 그리고 수많은 나사가 박히고 만다.
두문불출하며 1년 넘게 재활의 기간을 보낸 타이거 우즈는 올해 2022년 마스터스를 시작으로 다시 도전을 시작했다. 큰 사고를 겪은 뒤 참가하는 첫 공식투어였지만 이 대회에서 그는 무사히 컷 오프를 통과했고 최종순위 47위로 순조롭게 게임을 마쳤다.
목표는 우승이라고 호기롭게 참가일성은 밝혔지만 잃어버린 실전 감각도 되찾고 그간 기다려온 세계 골프팬들에게 보답하는 의미가 컸던 대회였다.
끝나지 않은 여정
어쨌거나 순위를 떠나 그가 필드에 다시 선다는 것만으로도 골프팬들은 감격해했는데 이번 마스터스 투어에 참관한 갤러리들이 그에게 가장 많이 건넨 말은 바로 ‘땡큐 타이거’ 였다.
실로 오랜만에 모습을 선보인 골프 황제에게 사람들이 갖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겠지만, 모진 풍파의 세월을 뒤로한 채 다시 그린위에서 팬들과 함께 호흡하며 플레이를 펼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최고와 최악의 순간을 넘나들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타이거 우즈는 올해 마흔 여섯, 어느덧 4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중년에 접어든 나이와 때로는 지팡이를 짚어야 할 정도로 아직은 불편한 다리 등 쉽지 않은 여건이지만 타이거 우즈는 계속해서 골퍼로서의 도전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엄청난 교통사고를 겪고도 불굴의 의지로 정상에 섰던 벤 호건도 있고 50대에 PGA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둔 필 미켈슨의 예도 있다. 메이저 대회 18승이라는 숫자가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지만 이미 PGA 최다승을 기록 중인 타이거 우즈는 규모를 막론하고 자신이 참여한 투어에서 단 한 번의 우승이라도 거두는 순간 바로 역사가 된다.
더 없이 화려했던 순간도 때론 피하고 싶었던 고통스러운 현실도 모두 극복해 온 타이거 우즈!
골프 황제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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